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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냐면 ‘유체이탈 화법’ 치유책 / 곽중철2015-06-18

[기고] 왜냐면 ‘유체이탈 화법’ 치유책 / 곽중철

 

 

대통령보다 한 살 덜 먹은 필자도 회갑을 훌쩍 넘기고 보니 강의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한 건가?”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왜 이름이 생각이 안 나지?”라는 약품 선전문구도 있듯이 고유명사가 기억이 안 나 애먹은 지는 10년도 넘은 것 같다. 여러 집단과 사람의 이름을 언급해야 하는 연설을 할 때는 꼭 메모를 해 가야 바로 앞에 사람을 두고 이름이 입안에서 뱅뱅 도는 낭패를 막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숭문어눌(崇文語訥)의 전통이 있어 말하기 교육을 경시하고, 말 잘하는 사람을 “입만 깐”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1년 내내 잘된 연설 하나 구경하기 힘들고 인터넷에서도 명연설 하나 찾기 힘들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각계각층의 말이 에스엔에스로 실시간에 퍼지는 세상이 되어 발언이나 연설의 품질이 도마 위에 오른다. 국내외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더 이상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모욕적인 평가를 받는 원인을 생각해보고 그 치유책을 제안하고 싶다.

 

박 대통령이 취임 뒤 몇 차례 해외 순방여행에서 영어와 중국어, 프랑스어로 연설을 한 것이 화제가 되었을 때 필자는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외국어는 자신의 모국어와 똑같다. 모국어 억양과 속도와 똑같이 외국어를 한다. 또박또박 한마디 실수 없이 하지만 웅변과 감정이 없어 국민들은 곧 싫증을 느낄 것”이라 예언했다. 그런데 이제 국민들은 싫증을 넘어 ‘유체이탈’이라는 표현으로 대통령의 말을 미워하고 있다.

 

티브이로 외국 지도자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박 대통령처럼 탁자에 놓은 원고를 보는 사람은 드물다. 연설을 할 때야 오바마 대통령도 좌우에 설치된 텔레프롬프터를 보며 읽지만 그의 연설은 훨씬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크다. 타고난 웅변가로 수많은 연설 경험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는 연설 내용을 숙지하고 다시 생각을 하며 읽기 때문에 알아듣기 쉽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 전 대통령도 연기하듯 연설을 했기에 말에 자신감이 묻어나고, 위대한 소통가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다.

 

대통령의 입이라는 대변인과 홍보수석이 브리핑하는 말도 별로 나을 것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대통령의 모든 발언을 사전에 거르고 다듬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일관된 국정철학을 보여주는 발언과 연설을 쉽고 짧은 문장으로 엮어 대통령에게 제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케케묵은 한자 표현은 최소화하고 촌철살인의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대통령은 만기친람하는 시간을 아껴 전문가가 제공하는 원고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뒤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발언할 때 다시 한번 그 뜻을 생각하며 즉흥연설 하듯 자연스럽게 해야 국민들이 비로소 공감을 느끼고 대통령을 응원할 것이다.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겸 한국통번역사협회장

 

 

[이 기사 주소]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6963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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