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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국가통번역원 만들어 국격 높이자2013-01-10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한국통번역사협회장
2013.01.09 22:39 조선일보 A33면


지난 연말 한 중앙부처의 초대를 받아 '중소기업 통번역 업무 지원을 통한 통번역 산업 활성화 방안'이라는 소규모 간담회에 참석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자리를 물러날 장관이 '통번역 업무의 백년대계'를 구상하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었다. 간담회 시간이 길지 않아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장관의 말씀 중에 인상적인 것은 "우리나라 장·차관들은 외국인들과 접촉할 때 대부분 통역사를 쓰고 있지만 국·과장들도 통역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어로 의사를 명확하고 유창하게 전달할 수 없으면서도 통역사를 쓰면 자존심이 깎이고 창피하다는 통념 때문에 서투른 영어로 직접 소통하려다가 오히려 국익을 해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에 필자는 술을 마신 후 귀찮기도 하고 작은 비용을 아끼려고 대리운전 대신 직접 차를 몰고 가다가 대형사고가 나는 것에 비유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남다른 노력으로 고위 공무원이 된 분들이 외국어도 잘하란 법은 없다. 안 되는 외국어를 직접 하려고 애쓰는 대신 통역사를 쓰면 국가이익을 더 꼼꼼히 챙길 수 있고, 혹시 오해가 생기더라도 '통역상 문제'라고 둘러댈 여지도 생긴다. 간담회와 거의 같은 시기에 행정안전부에서는 영어를 제외한 6개 외국어 전문 통역사 7명을 선발했다고 발표하면서 그들이 앞으로 정부의 통역 수요를 맡게 될 것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6개 언어에 7명의 통역사로 어떻게 정부 전체의 수요를 충족한다는 말인가? 15개 부처가 통역사 수에 맞춰 외국인과 만나야 할까? 70명, 아니 700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정부 통번역 업무의 백년대계를 위해 새 정부는 국가통번역원을 설립해야 한다. 이 기구에서 일할 통번역사는 국가가 정한 시험을 통해 인증을 받은 후 등록을 하고, 국가가 정한 요율에 따라 통번역료를 받고 일하면 된다. 한·EU FTA의 오역 사태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일정 기간 후 정부 통번역 전담 업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공공기관들을 위한 통번역으로 업무를 확대하면 된다. 그 후 민간 부문의 통번역도 서비스할 수 있다. 그러면 작년 올림픽 후 축구협회의 잘못된 영어 이메일 같은 부끄러운 사례도 없어질 것이다. 캐나다나 호주에서는 이미 이런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이제 통번역 업무에서도 우리의 국격을 높일 때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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