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가 번역사업 ‘홀대’…올해 예산 달랑 10억원2015-03-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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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번역사업 ‘홀대’…올해 예산 달랑 10억원
관람객들이 국제도서전에서 전시 판매되는 책을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유일한 정부지원 ‘국외 고전번역’
정부의 국외 고전 번역에 대한 인식은 유일한 정부 지원 국외 고전번역사업인 한국연구재단의 ‘명저번역지원사업’의 역사에서 엿볼 수 있다. 명저번역지원사업의 예산과 과제 수는 3년 전부터 감소해왔다. 3일 <한겨레>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혜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통해한국연구재단한테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명저번역지원사업 예산은 10억6300만원이다. 2011년 24억원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같은 기간 과제 건수도 89개에서 24개로 대폭 감소했다. 2012년과 2013년엔 신규 과제 모집을 하지 않아 학계에선 이 사업이 아예 없어진 걸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명저번역지원사업은 한국연구재단의 전신인 한국학술진흥재단을 통해 1998년에 시작됐다. 지난 18년간 396종 696권(1월 기준)의 고전이 번역됐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같은 잘 알려진 고전부터 유검화의 16권짜리 <중국고대화론유편> 같은 방대한 분량의 생소한 고전까지 망라했다.
기재부, ‘번역사업’ 몰이해“예산 들일 필요있나” 삭감
번역자 과제당 2688만원 그쳐
이런 사정 탓에 명저번역지원사업은 민간 출판사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출간하기 힘든 책을 펴낼 수 있는 기회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만큼 출판사가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한국연구재단이 번역료와 교정·교열비, 번역권 비용을 부담하고, 도서관 배포용으로 1종당 150권가량의 책을 구입한다. 명저번역지원사업을 통해 번역된 고전을 출판해 온 아카넷 김정호 대표는 “학자들은 돈이 아니라 책임감과 학문 발전을 위해 번역에 참가한다. 출판사도 큰 이익은 안 되지만 의미 있는 사업이라 명저번역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번역서의 활용도를 높이고 번역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높이려면 좀 더 대중적인 고전을 명저번역지원사업 과제로 고르는 등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선순위를 정해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번역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한자사전처럼 일반인이 관심을 갖기 어려운 책을 명저번역지원사업에서 출판하는 경우가 꽤 있다. 학자들이 자신의 번역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판단하고 번역에 나서야 한다”고 짚었다. 쥐꼬리만한 예산 탓에 번역서의 절대량이 부족한 형편에 번역 기간마저 짧아 저질 번역 논란이 불거지기도 한다. 지난해까지는 1권이든 16권이든 번역을 최대 2년 안에 끝내야 했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그 기간을 최대 3년으로 늘렸다. 하지만 분량이 방대한 고전 번역엔 여전히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학계와 출판계는 명저번역지원사업에 대한 예산 확대와 더불어 이를 전담할 정부 기구를 따로 두자고 입을 모은다. 나남출판사의 고승철 사장은 “학문 체계를 세우려면 중요 고전 번역은 필수다. 보여주기식 행사 하나에 몇십억원을 쓰는 정부가 지원하는 유일한 고전 번역 사업 예산이 10억원뿐이라니 참담할 뿐”이라고 말했다. 박상익 교수는 “명저번역지원사업의 예산은 거칠게 표현하면 거지한테 동전 몇 푼 쥐여주는 수준이다.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전담할 번역청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